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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5월(2021) 소식입니다.

조회 : 987 1 송지순

힘들었던 4월을 보내고 맞이한 5월도 쉽지 않은 시간이었습니다. 비자로 인해 한국을 가야 할 지도 모르는 불안정한 시기에 육체적으로도 상황적으로도 관계적으로도 다 기록할 수 없는 어려움들이 있었고, 결국 한국을 나가지 않는 것으로 결정했습니다. 차라리 나갔으면 덜 힘들었을지도 모른다는 미련이 생기기도 했습니다. 우리가 기대하던 때에 비자 신청을 위한 서류가 나오지 않아서 결국 3개월 여행 비자를 받아 지내게 되었습니다. 이 여행 비자로는 제가 지금 하고 있는 일들이 문제가 될 수도 있는데, 만약 문제가 생긴다면 비자 진행 중임을 어필해야 합니다. 그래도 불법 체류자의 신분을 면하고 나니 조금 마음이 놓입니다. 아내랑 산이는 제 워킹 비자에 따른 가족 비자를 받았었는데, 3년 전의 일이라 저와 만료 일자가 다르다는 것을 잊고 있었습니다. 온 가족이 5월 30일 만료인 줄 알고 착각을 해서 며칠 간 불법 체류를 했고, 사정을 이해해 준 국경 이민국 직원의 도움을 통해 3개월 여행 비자를 받았습니다. 그 때 맺은 인연으로, 저와 들이 비자가 만료되었을 때에도 그의 도움을 통해 해결을 했습니다. 워킹 비자가 계획대로 제 때 연장 되지 않아 겪어야 했던 심적 시간적 육체적 비용적 부담이 컸는데, 이왕 이렇게 된 거 여행 비자를 최대한 연장하면서 워킹 비자를 내년쯤에 신청할 생각도 있습니다. 현재 속한 NGO를 통해서는 또 1년 밖에 비자를 받을 수 없기 때문에 1년 뒤 다시 이 수고를 하는 것이 너무 번거롭고 아예 NGO가 5년 갱신이 된 이후에 3년 짜리 긴 비자를 신청하는 것이 편할 것 같습니다. 제 생각과 다른 결과가 나왔지만, 여전히 우리를 인도하시고 책임지시는 선하신 주님을 믿고 지금의 결과를 받아들이는 연습을 하는 은혜가 있습니다.

 

제가 이런 저런 문제로 뛰어다니는 동안 아이들도 큰 부담을 지니고 있었습니다. 쿠미 대학교에서 세종학당(해외의 학생들이 한국어를 배울 수 있도록 설립된 기관)이 올해 초부터 운영이 되고 있었는데, 코로나와 여러 가지 상황으로 개원식을 아직까지 못하고 있다가 5월 14일에 여러 귀빈들을 모시고 행사가 치러 졌습니다. 의미 있는 시간이라고 생각했고, 쿠미 대학을 섬기시는 여러 선교사님들이 불철주야 열심히 하시는 모습에 감동을 받고 동참하고자 강이 산이가 한 순서를 맡겠다고 했습니다. 아이들의 의견을 진지하게 묻지 않고, 엄마 아빠 주도 하에 이뤄진 결정 속에서 행사 날짜가 멀지 않아 연습의 시간이 많이 부족했습니다. 최소 1년 반 ~ 2년 전에 유치원에서 들었던 우간다 국가를 1절부터 3절까지 외워 부르는데, 세종 학당 개원식 첫 순서가 우리 아이들이 되어 부담이 더 컸습니다. 제가 바쁠 때는 어쩔 수 없이 아내에게 연습을 맡기고 다녀 왔는데, 지친 몸을 이끌고 와서 확인을 했더니 연습이 많이 부족했음을 느꼈습니다. 조급한 마음에다가 잘 해내지 못하는 아이들 모습에 실망하고, 제대로 지도하지 않은 아내에 대한 원망도 있었습니다. 벼락치기 스파르타 식으로 아빠가 태도를 전환하니 오히려 연습 분위기가 안 좋아지고 아이들이 얼어붙는 것이 느껴졌습니다. 국가를 부르는 것이 전혀 즐겁지 않고, 엄마 아빠가 하자고 해서 하는데다가 연습이 제대로 되지 않아 여러 사람들 앞에서 아무 것도 못하고 울다 내려오는 것 아닌가 하는 걱정이 들었습니다. 다시 제 마음부터 다 잡고 아이들과 천천히 이야기를 시작했습니다. “이 행사를 위해 우간다 언니 오빠들도 한국말로 대사를 외워 연극을 준비하고 그 외에도 태권도와 아리랑, 선교사님들은 사물놀이를 위해 몇 달을 연습하셨는데, 우리는 이렇게 대충대충 연습해서 되겠니… 잘하고 못하고를 떠나서 최선을 다해 연습하지 않은 태도에 아빠는 뭐라 하는 거야, 항상 ‘평범한 일을 비범하게!’를 강조했기에 이렇게 건성으로 하는 것을 용납하지 못하겠어, 다른 분들처럼은 못해도 우리 최선의 노력을 남은 시간까지 해보자” 이 말을 듣고, “아빠, 죄송해요…ㅠㅠ” 아이들은 울면서 다시 연습을 시작했습니다. 공연 시작 10분 전까지도 아이들은 자신감이 없어 보였고, 계속 틀려도 되니까 자신 있게 크게 하자고 독려한 뒤 이제는 무대에 선 아이들을 긴장과 함께 기도하며 지켜볼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자기를 쳐다 보고 있는 상황도 마주한 적 없고, 익숙하지 않은 언어로 노래를 하는 미션이 애들에게 얼마나 부담이 될까 생각하며, 앞으로는 아이들에게 충분히 설명하고 결정할 수 있도록 해야겠다는 후회 섞인 다짐을 되 내었습니다. 한복을 입은 아이들이 청중들에게 큰 절을 올리고 청중들은 자국의 국가 제창을 앞두고 모두 일어나 더 부담이 가중 되었습니다. 이 때 반주 없이 생 목소리의 우간다 국가 첫 소절을 힘겹게 떼었는데, 어린 두 아이의 입술에서 터져 나온 그 목소리가 너무 자신감 있고 힘찼습니다. 1절을 다 부르고 2절, 제일 자신 없어하던 3절까지 실수 없이 부르는 동안 객석에서는 하나 둘 씩 합창으로 화답하였고, 아이들의 노래가 끝나는 순간 박수와 함성이 쏟아졌습니다. 걱정을 뛰어 넘고, 기대 보다 훨씬 더 놀랍게 잘 해낸 아이들이 너무 자랑스럽고 고마웠습니다. 아이들도 다시 웃음을 찾았고, 자신들에게 집중해주고 보여주었던 환호를 기억하며 아주 좋은 기억으로 그 날을 떠올리곤 합니다. 그 뒤로 틈 나면 우간다 국가를 3절까지 부르는 탓에 머리가 아파 그만하라고 말리고 있습니다.

 

세종학당 개원식을 위해 오신 손님들과 수고한 분들을 격려하기 위해 마련된 식사 자리에도 참석하지 못하고 급히 음발레로 차를 몰았습니다. 공교롭게도 하루에 두 가지 행사가 잡혔는데, 개원식을 마친 저녁 시간에 아이들이 가게 될 타일러 스쿨에서 1년을 마무리하는 자리에 초대 받은 것입니다. 정식으로 입학도 하지 않았는데, 함께 인사하고 분위기를 파악할 수 있는 자리를 갖게 배려해 주어서 감사했습니다. 학년 별로 나와서 시상과 발표 등을 하는 모습과 그것을 담기 위해 분주히 사진과 영상을 찍는 부모님들의 흐뭇한 얼굴을 보는 것이 좋았습니다. 늘 계란을 배달하며 짧게 인사 나눴던 사람들과 더 가까워진 느낌이었습니다. 아이들도 얼른 학교에 가고 싶다며 날짜를 세고, 매일 수행 과제들을 열심히 하며 학업적으로도 준비하고 있습니다.

 

사람이 그리운 우리 아이들은 한국에서 잠시 다녀가는 일행들이 있을 때마다 기대가 넘칩니다. 이번 달에 한 팀이 정말 오랜만에 다녀갔는데, 다행히 그 기대가 짧은 만남 뒤의 헤어짐으로 실망으로 변하지는 않는 것 같습니다. 아직은 이웃 선교사님들과 식사 교제를 하는 것도 부담이라 마음 만큼 그 시간을 갖지 못해 아쉽습니다. 이제 학교에서 친구를 사귀고 나면 관계의 폭이 훨씬 넓어져서 더 건강하게 자랄 수 있으면 좋겠습니다.

 

우간다는 전기가 불안정하여 태양열 패널을 이용해 비축해 둔 전기를 비상시나 상시로 사용하곤 합니다. 어느 날 예배에서 아이들과 이 주제로 은혜를 나누었습니다. 태양이 잘 비치는 곳에 설치된 패널들을 주변에서 찾아보며, 예수 그리스도가 비추어 주시는 강렬한 빛을 생명의 패널에 잘 충전해서 그리울 때, 힘든 마음이 들 때, 내 뜻대로 되지 않을 때도 생명의 빛이 흐를 수 있도록 하자고 했습니다.

 

그런데 이 빛을 통해서 제 내면 안에 쉽게 사라지지 않는 어둠이 있음을 봅니다. 바로 “불신” 입니다. 우간다에서 경험한 사건들이 이 불신의 벽을 점점 높이 세워가고 있습니다. 속는 것이 싫어서 최대한 자체적으로 해결을 하며 지내는 것이 때로 더 편할 때도 불편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신뢰 없이는 관계 형성이 어렵고, 그저 사무적인 관계로 머물게 되는 것 같아 답답합니다. 지금 제가 대행하는 일들이 많아서 부담 때문에 그렇다는 핑계를 댈 수 있지만, 주님께서 이 벽을 허무시도록 내어드립니다. 마침 너무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제 자신에 대한 성찰을 할 즈음에 읽게 된 글이 있습니다. 이 글을 통해 불신의 비용이 큰 사회에서 지나친 확인과 몰아세움으로 도덕적 무결을 추구하는 것 이상의 가치를 알려주시는 것 같아 눈물이 났습니다.

 

내가 어렸을 때 시골집에는 대문이 있고 뒤쪽이나 옆 모퉁이에 샛문이 있는 집이 많았다. 우리 집에도 뒤뜰 장독대 옆에 작은 샛문이 하나 있어 이곳을 통해 대밭 사이로 난 지름길로 작은집에 갈 수 있어서 자주 드나들었다. 이 샛문은 누나들이나 어머니가 마실을 가거나 곗방에 갈 때, 그러니까 어른들 몰래 드나들 수 있도록 만들어 놓은 어른들의 배려인지도 모른다. 옛날 어른들은 알면서도 눈감아 주고 속아 준 것 같다. 이것은 마음의 여유이고 아량이라고 할 수 있다.

 

내가 열세 살 때의 일이다. 황금물결 넘실거리던 가을 들녘은 추수가 끝나자 삭막하였지만, 넓은 마당은 다니기도 어려울 만큼 나락베눌로 꽉 차 있었다. 하늘 높이 쌓아 놓은 나락베눌은 어린 우리들이 보기에도 흐뭇했는데, 여름 내내 땀 흘리며 고생한 어른들이야 밥을 먹지 않아도 배가 불렀을 것 같다. 그 속에서 우리는 신나게 숨바꼭질을 하며 놀았다. 늦가을 어느 날 타작을 하여 나락을 마당에 쌓아 놓고 가마니로 덮어 놓았다. 다음날 아침 어수선한 소리에 나가 보았더니 때까우(거위) 한 마리가 목이 잘린 채 대문 앞에 죽어 있었다. 원래 암놈은 목소리가 크고 맑아 소리를 쳐서 엄포를 놓거나 주인에게 구호 요청을 하고, 수놈은 허스키 목소리를 꽥꽥 소리를 지르며 목을 길게 빼고 날개를 치면서 덤벼들어 물어뜯는 고약한 성질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동네 아이들도 무서워서 우리 집에는 얼씬도 못했다. 웬만한 개보다도 사나워 집 지키기에는 안성맞춤이었다.

 

그 무렵은 식량이 귀하던 때라 도둑이 성해 개나 때까우를 키우는 집이 많았다. 그런데 웬일일까? 그날 밤 도둑이 든 것이다. 때까우가 도둑놈 바짓가랑이를 물자 낫으로 목을 후려치고는 나락을 퍼담아 가지고 간 것이다. 그날 밤은 초겨울 날씨로 바람이 몹시 불고 좀 추웠다. 싸락눈이 내려 발자국이 눈 위에 선연하게 나타나 있었다. 나는 아버지 뒤를 따라 강아지마냥 종종걸음으로 쫓아갔다. 발자국은 고샅을 지나 맨 꼭대기 오두막 집으로 이어져 있었다. 그런데 아버지는 아무 말 없이 되돌아서 발자국을 지우며 오시는 것이었다. 평소 호랑이같이 무섭고 급한 성격이라 당장 문을 차고 들어가 도둑의 목덜미를 잡고 끌어내어 눈밭에 팽개치거나 동네 사람들을 모아 높고 그들이 보는 앞에서 멍석말이라도 했어야 했다. 아니면 경찰서로 끌고 가서 곤욕을 치르게 하거나 형무소라도 보냈음직한데 아무 일도 없었던 것처럼 뒷짐을 지고 돌아오시며 “어린 새끼들을 데리고 얼마나 배가 고팠으면 이런 짓을 했을라고” 하시는 것이었다. 어린 소견이지만 여름 내내 불볕더위 속에서 땀 흘리며 농사지어 탈곡해 놓은 나락을 훔쳐 간 도둑을 당장 요절이라도 냈어야 평소 아버지의 위엄이 설 것 같았는데……., 그런데 미지근하고 우유부단한 행동이 두고두고 못마땅하기까지 했다.

 

그러한 생각은 오랜 세월이 흐른 후에야 아버지의 깊은 뜻을 조금이나마 헤아릴 수 있었다. 그것이 마음의 여유이고 지혜라는 것을. 도둑은 잡지 말고 쫓으라는 뜻도… 경행록에도 “남에게 원수를 맺게 되면 어느 때 화를 입게 될지 모른다”고 했고, 제갈공명도 죽으면서 “적을 너무 악랄하게 죽여 내가 천벌을 받게 되는구나”라고 후회하며, 적도 퇴로를 열어주며 몰아붙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그날 이후 H씨는 평생토록 원망과 원한 대신에 나락 한 가마니 빚을 지고 아버지에게 그 은혜를 갚기 위해 우리 집에서 살다시피 하며 궂은 일 마다 않고 해냈다.

 

아버지께서는 가끔 이런 말씀을 하신 적이 있다. “세상 일은 꼭 생각 같이 되는 것이 아니여. 이치나 원칙만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많이 있단다 남의 사소한 실수 같은 것을 덮어 주지 못하고 몰아세우고 따지는 말은 삼가야 하고, 사람을 비난할 때도 상대방이 변명할 수 없도록 공격하는 것은 좋지 않아, 상대방이 달아날 구멍을 조금 남겨 놓아야 한다”고...

 

우리 일상생활에도 샛문과 같은 여백의 아름다움이 있어야 되지 않을까? 동양화에서 여백은 무한한 뜻을 내포하고 있으며 이 여백은 보는 이의 몫으로 구름. 새. 꽃, 나아가 보이지 않는 바람까지도 그려 넣을 수 있는 여유의 공간이다. 우리는 수묵화의 넉넉함과 아름다움은 즐길 줄 알면서도 자신의 마음은 비우지 못하고 항상 위만 쳐다보고 달려가고 있으니 얼마나 어리석은 짓인가?

 

무소유가 마음의 평안을 가져오고, 여유를 가진 삶이 풍요를 누린다는 것은 누구나 알고 있다. 또 너무 완벽하고 철두철미한 사람은 타인이 접하기가 어렵고 경계의 대상이 된다. 공자는 ‘물이 너무 맑으면 고기가 살 수 없는 것처럼 사람도 남의 옳고 그른 것을 살피다 보면 친구가 남아있지 않는다’고 했다. 때로는 약간 엉성하고 빈틈이 있어야 함께 어우러지기도 하고 동화도 되지 않을까? 아내가 출근길 엘리베이터 앞까지 따라 나와, 미처 못 채운 와이셔츠 단추도 채워 줄 수 있도록 빈틈을 남겨 놓는 것도 여유가 아닐까 생각해본다.

 

“도둑은 잡지 말고 쫓으라는 뜻도… 적도 퇴로를 열어주며 몰아붙여야 한다는 말을 남겼다.” 이 구절들을 다시 한 번 보면서 의심되는 정황에 결백을 증명해내는지 못하는지 따지는 제 모습, 또 의심이 제 예상과 맞았을 때의 모습을 떠올려 보았습니다. 그리고 “누구든지 죄 없는 자 돌로 치라”고 말씀 하신 예수님을 바라봅니다. 간음한 여인이 현행범으로 잡혀서 사람들에게 둘러 싸였고, 즉결처분의 전통 속에서 돌에 맞아 죽임을 당하려는 찰나 예수님을 괴롭히기 위해 의도적으로 질문을 던진 바리새인들과 여인에게 주신 생명의 메시지였습니다. 때마다 학비를 요구하는 형편이 어려운 이가 있습니다. 그러나 그의 뻔뻔함이 싫고, 가져오는 고지서나 영수증에서도 부정직함을 읽을 수 있습니다. 일일이 그것을 따지고 확인해야 하는 수고에 스트레스가 심했습니다. 저는 이 사람에게 샛문을 열어 둘 여유도 없고, 이 사람이 정신을 차려서 정직해지기를 인내하기 보다는 지금까지의 만행을 이제라도 바로 끊어내야 한다고 생각했습니다. 결국 제가 아닌 다른 분이 이 사람과 소통하고 일을 처리하게 되었습니다. 제가 받는 스트레스를 경감시켜 주시기 위한 조치에 감사하면서도, 이게 본질적 해결이 아님을 깨닫습니다. 생명의 빛을 비추시는 예수님이 제 심령에 새 일을 행하여 주시길 기도합니다.

 

농장에서는 새로운 전기가 마련되었습니다. 바로 지난 달 소식지에서 코로나로 인해 계란 판매의 길이 막힌 것 뿐만 아니라, 여러 시도들을 미룰 수 밖에 없었습니다. 그 실패들 때문에 양계에 대한 방향성을 자립에서 생명 농업으로 재정립하게 된 것이 의미 있는 성과라 할 수 있지만, 생명 농업은 이제 출발선에 있는 것이고 솔직히 말해 혼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배울 수 있고 의논할 수 있는 스승, 동역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혼자는 어려워도 함께라면 할 수 있다” 매해 여름 국토사랑행진을 하며 외쳤던 구호가 절실해지는 요즘입니다. 그래서 기도하게 됩니다. 라고 나누었습니다. 비가 계속 내리고 강이 범람해 물에 잠겼던 터라 이번 토마토 실험도 기대를 할 수 없었는데, 몇 주간 비가 안 오고 맑은 날이 계속 되면서 잘 자라고 있습니다. 그래서 우간다에서 토마토를 직접 해보셨던 농업 선교사님께 사진과 질문 등을 보냈고, 선교훈련으로 바쁘신 중에도 친절하게 답변해주셨습니다. 그러다 이제 토마토 밭을 멀칭해야 하는 시즌이 되어 멀칭 재료를 찾고 있는데, 마땅한 재료가 없어 계속 주변을 수소문 하고 있었습니다. 며칠이 지나도 소득이 없어 점점 마음이 불안해 지고 있는데, 농장에 직원들이 근처 어떤 농부한테 가보지 않겠냐는 것입니다. 지푸라기라도 잡는 심정이었기에 누군지도 모르고 찾아 갔다가 깜짝 놀라고 말았습니다. 나무에 Ecological Organic Farm 이란 간판이 가리워져 있었지만, 우리 농장에서 불과 300m 떨어진 곳에 이런 곳이 있다는 것을 3년 넘게 지나다니면서도 모르고 있었습니다. 토마스라고 자신을 소개한 이 어른은 이미 이 근방에서는 매우 유명한 농부라고 했습니다. 곳곳에 땅을 가지고 다양한 작물들을 친환경으로 키워내고 있었으며, 집 밖은 천연 비료를 만들고, 집 안은 천연 미생물과 영양제를 만드는 작업장이었습니다. 생명 농업은 이제 출발선에 있는 것이고 솔직히 말해 혼자서는 자신이 없습니다. 배울 수 있고 의논할 수 있는 스승, 동역자가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도 합니다 라는 말이 그대로 이루어졌고, 더욱 놀랍고 감사한 것은 그가 바로 제 지척에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는 겁니다. 그래서 우간다를 떠나시고도 그간 저를 성심 성의껏 도와주셨던 선교사님께 이렇게 감사 인사를 드렸습니다. 감사합니다! 이 모든 것이 선교사님과의 만남에서 시작된 거에요. 제가 양계만 생각했다면 자연농업에 관심도 안 가졌을 텐데 선교사님 통해서 새로 시각이 열렸고 그 과정 중에 비로서 원래부터 곁에 있던 우간다식 자연 농업인을 붙여주신 거지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물이 없어 불평했지만 사실 르비딤에서 물은 그들 눈에 보이지 않았을 뿐 흐르고 있었습니다. 물이 없던 것이 아니라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없었음을 보여주는 사건처럼 저 또한 하나님께서 이미 오래 전부터 예비하고 계셨음을 느낍니다. 선교사님 다시 한번 감사합니다! 저와 협력의 관계를 맺게 된 토마스를 쿠미 대학교에도 소개해서 농과대 학생들에게 자연 농업에 대한 세미나 혹은 강의를 하게 될 것 같습니다. 밭에 감추인 보화를 발견한 기쁨이 쿠미 대학교를 통하여 학생들과 우간다 곳곳에 흘러갈 수 있는 계기가 마련되면 좋겠습니다.

 

지난 달 소식지에서 손 쉬운 성공에 끌렸었고, 빨리 결과를 내고 싶고 증명하고 싶고 인정 받고 싶고 떳떳하고 싶었던 제 모습을 나누었습니다. 근래 한 책을 읽으며 제 내면을 다시 한 번 스캔하게 됩니다. 양계를 하면서도, 조그만 밭에 실험을 하면서도, 계획대로 일이 진행되지 않을 때 순간순간 낙심하고 있지 않은가? 왜 그러한가? 이 사역의 결과에 마음을 두고 있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순간순간 예민해지고, 평안이 깨집니다. 이 책을 통하여 다시 한 번 제 마음을 생명 되시고, 안식과 기쁨, 평안이신 예수님께 두게 됩니다. 그리스도는 항상 동일하십니다. 지금 내가 추구하는 것이 가장 놀라운 축복인 그리스도 예수님인가, 그리스도 예수님이 그 분의 뜻에 따라 주실 수도 안 주실 수도 있는 (사역의 관계의 건강의) 축복인가? 이것이 얼마나 교묘하게 찾아오는지 늘 깨어있어야 하겠습니다.

 

하나님은 당신이 우리의 하나님 되시고 우리가 그 분의 백성이 되는 공동체를 세우고자 하십니다. 이것이 에덴동산 이후 그분의 계획이었습니다. 그러니 각기 다른 방향으로 가는 우리는 마치 “아버지와 함께 있는 것에는 관심 없어요. 내 몫의 재산을 나눠주세요” 라고 말하는 탕자와 같습니다.

그것이 바로 옛 생활의 길입니다. 그것은 어리석을 뿐 아니라 악합니다. 인생은 결코 우리가 원하는 기쁨을 가져다 주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그것을 아십니다. 아담과 하와가 에덴에서 쫓겨났을 때 이 세상은 결코 우리에게 안주할 만한 만족을 주지 못하게 되었습니다. 정원에는 잡초가 나고 그것을 뽑을 때마다 손이 가시에 찔립니다. 인간관계는 완전한 친밀감에서 오는 충만한 기쁨을 주지 못합니다. 자기중심적인 경쟁에 시달리며, 화합하려는 모든 노력마저도 “난 상처받았어요, 당신이 잘못했어요” 라는 태도로 우리의 필요를 채우는 데만 급급하다가 수포로 돌아가고 맙니다.

우리는 이 모든 것을 올바르게 교정할 수 없습니다. 인생을 형통하게 만들지 못합니다. 천국에 갈 때 까지는 결코 완전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도 우리는 원하는 물을 얻기 위해 할 수 있는 일을 찾으려고 애쓰며 메마른 땅을 삽으로 파는 사람과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 기도는 대부분 메마른 땅에 숨어있는 샘을 찾아달라는 간청입니다. 예수님은 종교적인 우물을 파는 사람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목마른 자들아 내게로 와서 마셔라. 네 삽을 버려라. 우물은 이미 파여 있다. 와서 내가 주는 물을 마셔라. 내게로 와서 좋은 것을 먹어라. 너희 마음이 기름진 것으로 즐거움을 얻을 것이다. 나와 교제하는 것보다 더 큰 즐거움이 없을 것이다. 언제든지 나아올 수 있다. 내게로 나아오너라(요 7:37~39, 사 55:1~3 참조)

그런데도 우리는 여전히 주를 알아가는 더 좋은 소망보다 그분이 줄 수 있는 더 나은 삶에 가치를 두는 옛 길로 향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무익하고 악할 뿐입니다. 그것은 그분께 가까이 나아오라는 초대를 일축해 버리고, 대신 우리가 원하는 축복을 얻을 수 있으리라 생각되는 원칙을 열심히 따르는, 한 마디로 그 분을 경멸하는 태도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을 만날 수 있고 또 이미 만났습니다. 그분을 만나려는 소망은 이 세상의 더 나은 삶에 대한 소망을 훨씬 넘어서는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첫 번째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그리스도와 더 깊은 관계를 추구하는 것보다 더 나은 인생을 위한 생활에 더 많은 에너지를 쓰는 것은 악한 것입니다. 이것이 우리가 두 번째로 알아야 하는 것입니다. 이것은 하나님에 대한 모독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가장 좋은 천국을 주셨는데 우리가 다른 것을 원하는 것은 그분을 멸시하는 것과 마찬가지 입니다. [1]

 

근래 이웃과의 관계에서 어떻게 풀어가야 하는지 지혜를 구하고 있는데, 귀한 응답을 얻은 것 같습니다. 또한 자연 농업인과의 만남을 해석할 때도 내가 이렇게 했더니 이렇게 되었다는 인과 법칙, 옛 길에서 벗어나야 함을 느낍니다. 이와 반대로 4월, 5월에 예상치 못한 악순환의 고리, 특히 가족들 건강에 계속 어려움이 있을 때 스스로를 정죄하며 올바르게 행하려고 노력하려 했습니다. 그래서 다시 하나님의 해결을 받으려고 자책하며 더 잘하려고 할수록, 얼마나 피곤해 졌는지 깨닫게 하시고 그 옛 길에서 나오라고 하시는 음성을 듣습니다. 이제는 정말 다림줄을 새로 놓아서 옛 길에서 새로운 길로 나아가려 합니다. 그 길은 형통과 축복의 삶을 위한 종교적 율법적 열심이 아닌, 괴로움 속에서나 즐거움 속에서나 그리스도를 얻고 그리스도 안에서 발견되는 삶의 길입니다. 처음에 강이 산이가 감기 증세에서 금방 회복되었는데, 아내가 옮아서 꽤 오래 고생했습니다. 그러면서 들이도 옮고, 저도 옮은 상태에서 제대로 쉬지 못하니 회복이 더디었습니다. 이제 좀 회복되나 싶을 때에 다시 산이가 아파져서 아직도 힘들어하고 있습니다. 늘 같이 놀던 동생이 아파 강이도 하루하루 힘들기만 합니다. 그러나 우리 모두 나아갈 방향성을 발견해 기쁩니다. 건강할 때보다 더욱 주님과 가까워짐에 감사합니다. 하나님을 즐거워 하라!는 뜻을 이뤄가겠습니다.

 


[1] 『네 가장 소중한 것을 버려라』 , 7장 잘못된 소원 P.123~125, 살림 출판사, 래리 크랩

덧글 1개
작성자 :     암호 :
이종삼   2021-06-08 12:19
가난한님의 글을 읽으며 여전한 글 솜씨에 감동을 받습니다. 우간다의 생활이 만만하지 않음을 알았지만 이렇게 생생하게 전해 주니 구체적으로 기도하게 됩니다. 고국을 떠나면 언제나 누구에게나 비자 문제는 어렵군요. 부디 몸 조심하고 간강한 모습으로 만나길 소망합니다. 가난하지만 마음은 언제나 풍성한 그대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충만하게 임하시길 기도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