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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한 최현섭 선교사 우간다 2021년 2월소식입니다.

조회 : 1,705 1 송지순

일년 중 가장 짧은 한 달이 지나갔습니다. 바쁘게 보내서인지 그 속도가 더 빠르게 느껴집니다. 지난 달 소식지를 보며 우리 부부의 연약함에 공감을 표현해주신 분들의 답장에 많은 위로를 받았습니다. 우간다라는 환경이 자신의 모습을 보고 하나님 앞에 매달릴 수 있도록 깨우쳐 주는 곳임을 느낀다고 하셨습니다. 현재 교회가 처한 진짜 위기는, 눈에 보이고 귀에 들리는 혐오나 회피가 아닌 껍데기만 남은 신앙일지도 모른다면서... 목사 장로 집사 교사 라는 직분으로 맡은 바 일은 하지만, 내 삶을 하나님 안에서 돌아보지 못하는 것. 그리고 하나님을 생각하는 여유조차 없이 살게 되는 분주한 세상 속에서 깨어있기가 쉽지 않은 것 같습니다. 꿈의학교 학생이 터키에서 겪었던 일이 생각났습니다. 이슬람 사회이다 보니 낯선 이방인을 초대해서 섬기는 것이 자연스런 문화인지라 한 가정에 초대를 받았습니다. 또래 친구와 축구 얘기, 학교 얘기, 음식 얘기 등을 바디 랭귀지로 이어가며 언어와 문화의 장벽을 허물고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그러다 이방인이 왔다는 소식을 듣고 하나 둘씩 근처에 사는 가족 친지들까지 모두 모였는데, 가장 어른인 듯한 분이 “종교가 뭐냐?”고 물었답니다. 순간 긴장하며, 머뭇거리니까 “너 불교냐?”… “너 카톨릭이냐?”… “너 이슬람 믿냐?” … “너 힌두교냐?” … 아무런 대답도 하지 못하다가 온 관심이 자신에게 집중되어 피할 수 없는 상황에서 무척이나 고심 끝에 “저는 예수님을 믿습니다….” 이 한 마디를 겨우 했답니다. 그랬더니 그 질문을 하신 집안 어른이 표정과 태도가 달라지며 자리를 떠나셨고, 그 뒤를 이어 한 명 한 명 나가더니 그 친구마저 따라가서 집 안에 혼자 덩그러니 남아 있게 되었다고 합니다. 한국에서는 주일에 예배 드리고, 아동부 교사 하고, 십일조 하고, 성경 말씀 묵상 같은 개인 경건 생활도 해서 자신의 신앙이 괜찮다고 생각했는데, 막상 “저 예수님 믿습니다” 이 한 마디 고백이 이렇게 어려운 줄 몰랐다고, 다시 내 신앙을 점검하고 반성하게 된다는 나눔이 기억납니다. 꼭 선교지라서가 아니라 한국에서도 내가 마주하고 있는 불편한 상황, 분노하는 상황, 익숙해져 무뎌진 것들 속에서 내 신앙이 살아 숨쉬고 있는지 돌아볼 수 있는 기회가 있기를, 그것을 놓치지 않기를 바랍니다.

 

저 역시 그런 기회와 은혜를 주실 때마다 내가 믿는 예수님 뜻대로 반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지난 달 소식지를 쓴 뒤 아내와 캐서린의 관계도 더욱 편해졌고, 아내도 캐서린도 달라졌음을 느낄 수가 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아내가 한 말에 대해 이해함으로 반응하기 보다 변명과 회피로 나올 때가 있습니다. 아내도 그런 말을 하는 동기나 옳고 그름을 생각해봐야 하구요. 자라온 문화의 차이 속에서 서로에 대한 이해를 더할 시간과, 그럼에도 불구하고 용납할 수 있는 사랑을 필요로 합니다. 친밀함이 경멸함을 낳는다는 말을 처음 들었을 때도 엄청 공감할 수 밖에 없었는데, 현재도 경험 중입니다. 알렉스도 제가 기도하며 기다린 편지를 써왔는데, 구체적인 자백이 아닌 포괄적으로 자신의 잘못을 뉘우치고 회개한다고만 적어서 아쉬웠습니다. 반복된 부정직함 같은 치명적인 잘못도 자백을 통해 빛 가운데 드러내고 더 자유로워진 뒤에 다시 정직하게 일할 기회를 받는 용납의 경험이 꼭 필요하다 생각했지만, 아직 이들에 대해 잘 모르는 제 욕심일 수 있다는 생각으로 한 수 접었습니다. 그 뒤로 더욱 성실한 모습을 보여주고 있어 감사하게 되고, 그를 대하는 제 모습이 먼저 변화되고자 합니다. 잘 하다가도 가끔 달라짐을 느낄 때 기존과 다르게 반응하며 그를 ‘역할’이 아닌 ‘영혼’으로 대함을 통해 그가 스스로 반응할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이웃집 아이들과의 관계가 힘들어 염려를 하고 있던 강이도 많이 편안해졌습니다. 요즘은 거의 싸우지도 않고, 언제 그랬냐는 듯 잘 노는 모습에 마음이 편안합니다. 가끔 조심스럽게 충고하길, 그 아이를 너무 좋아.] 나머지 일희일비하고 집착? 하는 것보다는 태연하게 자연스럽게 대해야 편해질 수 있다고 한 말이 이해하기 어려웠을 텐데도 조금씩 자기 나름의 방법을 찾아가는 것 같아 감사합니다. 아빠랑 달리는 것이 좋아 활짝 웃는 강이를 보는 데 이 아이 안에 있는 기쁨을 느낄 수 있었고, 그 환한 미소에 괜히 울컥하기도 했습니다. 늘 한국을 그리워하고 왜 우리는 여기 살아야 하는가? 종종 묻곤 하지만, 밝게 살고 있는 모습에 미안해지는 것 같습니다. 우리가 어렵고 불편하고 부족한 가운데서도 그렇게 웃고 산다면, 하늘 아버지께서는 어떤 마음으로 바라보실까? 생각하며 강이를 안아주었고, 달리고 나서 빠르게 뛰는 심장의 느낌이 참 좋았습니다.

 

아내는 건강과 체력 회복을 위해 드디어 운동을 시작했습니다. 집에서는 아이들이 달라 붙어 방해를 받기에 들이의 관심을 다른 데로 돌린 뒤 몰래 탈출하고 있습니다. 그렇게 어렵게 나가서 오전에 30분 동안 사람들 지나다니는 공터에서 빡세게 운동을 한 뒤 얼굴은 홍당무, 몸은 파김치가 되어 돌아옵니다. 그래도 기분은 상쾌한 것 같습니다. 그 동안 저는 아이들과 함께 있으며 스케줄에 맞게 아이들이 스스로 할 수 있도록 분위기를 조성하고자 합니다. 그러다가 제가 아이들에게 제일 많이 하는 말이 “기다려!” 임을 알았습니다. 여기에 익숙해서인지 강이도 산이도 이렇게 얘기하면 잘 조르지 않습니다. 어른들과 함께 예배 드리는 시간에도 지루하고 좀이 쑤실 텐데 잘 앉아 있어 기특하기 까지 합니다. 그러나 과연 이게 맞는 건가? 라는 생각을 해보게 되었습니다. “기다려!” 해 놓고 보통은 약속을 지키기도 하지만, 못 지킬 때도 있다는 것. 이것이 아이들에게 어떤 실망감을 줄 지 심각하게 여기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아이들의 작은 요구에 기쁨으로, 즉각적으로 응답해줌으로써 안정감과 자유를 느끼게 하고 싶었습니다. 상대적으로 아내는 저보다 그렇게 잘 해서 보완해 주기에 다행인데, 아빠를 너무 딱딱하게 느끼는 것이 내재되면 몇 년만 지나도 저와 소통에 문제가 생길 것이라는 예상도 들었습니다. 그래서 가정 예배에서 아빠가 얼마나 “기다려!” 란 말을 많이 하는지 돌아보게 되었고, 워낙 귓구멍이 좁은(실제로 좁아서 어머니든 아내든 귀 파주는 사람마다 남의 말 잘 안 듣는다고 비꼬곤 함) 사람이지만 너희들의 말에 잘 반응할 수 있는 아빠가 되도록 노력하겠다 했습니다. “기다려!” 보다 더 심각한 것은 “왜 그랬어??” 입니다. 아이들이 넘어졌을 때, 무언가를 엎질렀을 때 아이들 상태부터 살피며 “괜찮아?” 라고 잘 물어보지 않곤 했습니다. 조심하라 했는데 그런 일이 벌어지면, 속상하고 짜증도 나서 얼굴이 딱 굳어지는 순간… 아이들은 넘어져 놓고도 잘못했다는 생각에 사로잡혀 얼어버리고 울려 하다가도 “안 다쳤어” 라며 거꾸로 저를 안심시키려 합니다. 몇 십번 아니 몇 백번 그런 순간이 있었는데, 나름 교육학을 전공하고 교사로 몇 년을 살면서 아이들이 언제 상처 받는지에 대해 연수 받고 경험하기도 했는데 무지하고 무식하고 무자비한 일을 반복했던 것입니다. 굳이 배우지 않아도 아빠라면 당연히 그래야 할 수 있는 것을 왜 못하는가? 자책도 후회도 했으면서 그 순간이 되면 또 그러고 있는 제 자신을 보게 됩니다. 그것에 대해서도 강이와 산이에게 용서 구하고, “(넘어져서)괜찮아??”, “(넘어져도)괜찮아~~” 하는 아빠의 모습을 보여줄 것을 약속했습니다. 이 약속만큼은 정말 꼭 지키고 싶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제가 이른 아침부터 늦은 오후까지 하루 종일 농장에서 일할 계획을 잡았습니다. 강렬한 태양이 내리쬐고, 작물과 땅이 말라가는 건기가 지속 되다가 얼마 전 무서운 장대비가 내리고 날씨도 점점 선선해짐을 느끼면서 곧 우기가 올 것이라 생각했습니다. 농장 한 켠에 있는 밭을 재정비해 작년에 말아 먹은 토마토를 제대로 성공해보고 싶었습니다. 자연 양계를 통해 날마다 쌓여가는 최상의 비료가 있기에 비가 오기 전 땅을 한 번 갈아 엎고 양계장 바닥을 퍼내어 뿌려두면 작물을 심기에 적합하지 않은 땅도 변화될 수 있지 않을까 하는 기대와 소망이 큽니다. 그래서 하루 날을 잡고 든든한 동역자들이자 식구들인 청년들과 함께 농장에 갔습니다. 다들 농업에 관심이 많고 그 중에 둘은 S 5, S 6(대학 입학 전 필수 기초 전공) 과정을 마치면 쿠미대학교 농과 대학으로 입학할 뜻이 있어 학업과 실습을 병행하고 있습니다. 처음 와 본 사람들 모두 감탄하고 놀라워 했던 것처럼 이들도 놀람과 동시에 관심을 갖고 배우고 싶어 했습니다. 그리고는 빵과 음료로 아침을 간단히 먹은 뒤 밭을 가는 작업을 시작했습니다. 그 날 제가 일하면서 육체적으로 정말 고됐지만 은혜가 커서 일기를 썼습니다.

 

예수님 감사합니다. 무성하던 잡초마저 누그러뜨린 건기의 강렬한 태양이 땅도 딱딱하게 굳게 했습니다. 그 땅을 보며 계속 답답하고, 잔소리 하며 직원들이 갈아 엎어주길 기다렸는데 오늘 드디어 칼을 아니 괭이를 뽑았습니다. 괭이질에 익숙한 우간다인들에게 물어가며 딱딱한 땅이 부드럽게 깨지고 갈릴 때마다 제 영혼이 새로워짐을 느꼈습니다. 노동이 곧 기도라는 예수원의 가르침이 생각나고 땀 흘리는 일을 통해 역사하시는 성령 하나님을 묵상했습니다. 흙과 같이 되어버린 닭장 바닥을 비료로 쓰기 위해 모으고 삽질할 때 마다 풀풀 나는 먼지에 숨도 쉬기 힘들었지만 냄새도 많이 나지 않고 딱딱한 땅 위에 뿌려진 뒤 비가 오면 땅을 부드럽고 비옥하게 한다는 생각에 기뻤습니다. 그러나 무거운 물통을 메고 물을 뿌리는 것은 정말 힘들었습니다. 어깨가 짓눌리고 펌프질 하는 팔은 점점 마비가 오고, 등에 누적된 통증 때문에 그만하고 싶었습니다. 노즐이 막혀 물도 생각만큼 잘 나오지 않아 답답하기도 했습니다. 균형을 잃어 미생물 액이 목과 등 뒤로 흘렀을 때의 찝찝함도 한 몫 했습니다. 이 정도 물 뿌려봤자 무슨 도움이 될까 하는 회의감도 들었지만, 메마른 심령에 내려주시는 단비의 은혜를 순간순간 묵상하며 찬양이 솟아 났습니다. 대단한 만찬은 아니지만 고생한 친구들과 함께 시원한 콜라와 짜파티&계란, 소고기 무초모를 먹을 때 행복했습니다. 혹시 그들이 고생한 만큼 더 좋은 음식을 기대했다면 미안하게 생각합니다… 아내가 싸 준 김밥도 맛이 좋았고, 일찍 나가 언제 들어올 지 모르는 저를 위해 새벽부터 김밥을 싸 준 정성에 감동을 느낍니다. 에너지는 소진되었어도 충만해져서 집에 돌아왔는데 반갑게 달려오는 아이들을 닭 장 안 먼지 뒤집어 쓴 탓에 안아주지 못했습니다. 그런데 아이들은 뭔가 위로가 필요해 보였습니다. 남편의 부재로 인해 아내의 고생을 예상은 했지만, “다녀왔어? 고생했네” 라는 말 속에 뭔가 만만치 않았던 일이 있었던 것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왜 아이들이 위로가 필요해 보였는지, 아내의 인사에 내가 받은 느낌의 실체는 무엇이었는가는 아내의 일기에서 드러납니다.

아… 진짜 남편이 쓰라고 하도 그래서 쓰고 싶지 않은 일기를 쓴다. 남편이 한국 갔을 때도 애들이 벼룩 물리고 감기에 걸리더니, 없으면 일이 생기는 것 같다. 어제 잘 때 집에만 하루 종일 있는 아이들이 밝게 지내면서 자기 할 일들 그래도 잘 하는 것에 대해 칭찬해 주었단다. 오늘도 나가면서 어제 아빠가 얘기한 것처럼 오늘도 잘 할 거라 믿고 간다 인사를 했다. 김밥 쌀 때 모양이 예쁘게 나오지 않아 아쉬웠는데 애들이 잘 먹어서 좋았다. 설거지 하고 애들도 잘 있었는데, 매일 아침 똥을 싸는 들이가 이제 기저귀 뗄 수 있게 아기 변기에 앉히는 훈련을 한다. 거기서 쌀 듯 하다가 매일 서서 싸다 앉아서 싸는 게 어색한 지 기저귀 안 찬 채 일어나서 돌아다닌다. 잠시 한 눈 판 사이 바닥에 개똥처럼 싸놨다. “들이야~ 변기에다 싸야지, 왜 여기다 싸~~” 말하면 다음에는 변기에다 꼭 쌀 것 같다. 똥 치우고 나서 바닥 닦고 있는데 또 다른 데다 똥을 쌌다. “아 여기다 싸라고!! 금방 똥 싸서 기저귀 안 채웠더니만 또 쌌어?” 하고 또 치우고 바닥을 닦았다. 그리고 엉덩이를 닦아줬다. 그런데 또 똥을 바닥에 쌌다. “아 진짜!!! 너 이제 기저귀 계속 차. 여기다 안 쌀 거면” 똥을 세 번이나 치우고 세 번이나 바닥을 닦고 또 엉덩이를 닦아주고 한 숨 돌리려 앉았다. 잠시 멍 때리고 있었는데, 낚시 놀이를 하겠다고 한 산이가 의자에서 넘어지며 어항을 엎어버렸다… “으악~~ 야 최산이!! 너 뭐야? 왜 그랬어?” 산이가 울었다. 하필 제일 큰 어항을 엎어서 엄청난 물과 모래들이 쏟아졌고, 물고기들도 없어졌다. 쇼파와 매트를 다 치우고 물을 닦아 내는데 정신이 없었다. 물은 계속 흘러가고 들이도 물을 밟고 넘어졌다. 넘어져서 우는데 일으켜 주지도 못하고 계속 닦았다. 어항 물이라 닦았는데도 비린내가 나서 비누를 풀어 다시 닦고, 몇 번을 더 닦았다. 닦으면서도 소리 지르고 짜증 냈다. 애들은 죄인이 되어 눈치만 보고 조용히 했다. 내 소리 지르는 걸 이웃집도 들었을 거다. 다 닦고 나니 점심을 차려야 했다. 식탁에 앉아 산이를 보니 계속 시무룩해 있다. 좋아하는 라면을 끓여줘도 평소와 다르다. 시간이 지나니 조금 누그러지고 산이도 불쌍해 보여서, “어항놀이 한다고 했을 때 허락해 준 엄마 잘못이다”라고 얘기했다. 남편한테 전화가 와서 괜찮냐고 하길래 힘든 일 있었고 이따가 집에 와서 얘기해 준다니까 계속 말해 달란다. 그래서 설명했더니 내가 그 자리에 있었으면 산이를 혼냈을 것 같다, 지금도 집에 가서 혼내고 싶다 한다. 그러다 애들한테 약속한 게 생각난다며 산이가 아빠한테 혼날 것을 걱정하고 있을 테니 아빠가 집에 가도 산이 안 혼낼 것이라고 말해 주어 안심하고 놀 수 있게 해주라 했다. 산이가 다행히 조금 편해져서 오후에는 놀았다. 남편이 와서 오늘 일기를 쓰자고 한다. 싫다고 했다. 또 뭔 교훈이 있는지 잔소리로 가르치려 하느냐 하니 아니란다. 서로 힘들었던 하루였다. 자기는 힘들면서 그래도 보람 있고, 채워지는 일이지만 나는 소진되고 지치는 일이다.

 

엎은 어항을 수습하며 힘들었을 아내를 생각하니 미안합니다. 하필 내가 없을 때 어려움이 생겨서… 그리고 그 일은 정리에서 끝나는 것이 아니라 아이의 상한 마음을 살피고 보듬는 일까지 이어집니다. 그러다 보면 아내 자신은 육체적 수고와 감정적인 피로까지 떠 앉고, 해소하지 못한 채 자신이 좋은 엄마가 아니었다는 자책의 부담까지 갖게 됩니다. 일기를 통해서 오히려 정화되기를 바랬고, 부담을 주기는 싫었습니다. 같은 날 일어 난 너무 대조적인 사건이 뭔가 의미 심장해서 남겨보자는 뜻도 있었습니다. 아내의 말처럼 공통되게 힘든 하루를 보냈지만, 저는 오히려 충만해지는 일의 영역에 속해 있고, 아내는 계속 빼앗기는 영역에 있습니다. 그래서 저보다는 아내의 영적, 심적인 필요를 채우는 것이 참 중요하다는 생각을 계속 합니다. 제가 성실하게 몸으로 도와주고, 세심하게 마음으로 격려하고 감사해야 하는데 많이 부족합니다. 더 연습과 훈련이 필요한 영역입니다. 성향의 차이도 있어 저는 별 것 아닌 것에서 잘 공감할 수 없는 의미를 찾아내고 자기 만족이라도 하지만, 아내는 복잡하게 생각하는 것보다는 단순하고 편하게 생각합니다. 그래도 이런 나눔을 하면서 어떻게 살고 있는지 반추해보고, 마르다와 같은 일을 하는 가운데, 마리아와 같이 예수님과 동행하는 은혜를 사모하고 있습니다. 또 하나 경험의 차이가 있는데 저는 20대 중반에 예수제자훈련 DTS를 받으며 공동생활 하는 가운데 매일 진행되는 Work Duty 시간을 통해 청소, 쓰레기 정리, 설거지 등이 예배와 묵상의 시간이 되고 그 장소가 성소가 됨을 배웠습니다. 개인적으로 강의 때 보다 샤워실 바닥 닦고 머리카락 치울 때 예수님과 동행하며 위로의 음성도 듣고 충만해졌던 은혜가 있었습니다. 그래서 원래는 아내에게 이런 선물 같은 시간을 누리게 해주기 위해 DTS를 준비하고 모든 것을 정리하기도 했으나, 우간다로 인도함을 받아 훈련도 없이 실전에 투입되어 있습니다. 그래서 벅차지만, 함께 도와가며 바른 길로 가기 위해 애쓰고 있습니다.

 

강이는 아직 일기를 쓰지 못해 대신 얘기로 오늘 일을 들려줬습니다. 엄마가 바닥 닦고 일하는 것을 보고 슬펐다, 신데렐라 같았다, 물고기가 죽어 불쌍하고 미안했다, 동생들이 울어서 마음이 아팠다, 지금도 눈물이 난다. 산이도 언니가 다 하지 못한 얘기를 어렵게 꺼냅니다. 엄마한테 혼났을 때 무서웠고, 아빠한테 혼날까 봐 무서웠다, 아빠가 안 혼낸다 해서 좋았다. 눈치가 빨라야 살아 남을 수 있는 셋째로 태어난 들이는, 엄마가 씩씩 대며 일을 할 때는 근처도 안 가고 조용히 있었다는 게 웃깁니다.

 

구정에 새해 인사를 주고 받다가 우간다에서 농업 선교를 하시던 선교사님의 격려가 힘이 되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선교를 해야 합니다, 선교사님은 이미 하나님의 선교에서 닭을 살리고, 땅을 살리고, 사람을 살리고, 지역을 살리고, 대학을 살리고. 살리는 농업. 생명농업을 한다고 하셨습니다. 저도 처음 양계를 이어 받았을 땐 자립에 방점을 두어 판로를 찾기 위해 애쓰고 적자에서 흑자 전환을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양계를 통해 정말 다양한 영역의 변화가 일어날 수 있다는 것을 보고 믿게 됩니다. 그래서 농업을 보고 지역, 넓게는 국가를 보고 꿈을 꿉니다. 그러나 생명농업에 대한 전문성이 없다는 것을 스스로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래서 혼란이 오고 흔들리기도 합니다. 하지만 포기하지 않고 하루하루 해 나가고, 조언을 얻을 수 있는 기회들을 통해 연명하고 있습니다. 농민이면서 농민운동가로 사셨던 아버지와, 생명농업으로 농민과 지역과 공동체를 세워간 분들 모두 제가 흉내낼 수 없는 삶을 사셨습니다. 저는 꿈과 비전을 가지고 살지 않았기에 한 영역의 전문가가 되기에는 글렀다고 생각합니다. 그래서 정말 자신을 의지할 수 없고, 하나님께 구하고 의지하며 그 분이 하시는 방법과 때에 맞추어 가는 것이 최선이라 생각합니다. 그러다 보면 내가 이룬 것이 아니라 하나님께서 이루셨음에 감사하고 영광 돌리는 삶일 것입니다. 아니면 무지하고 게을러서 이도 저도 아닌 삶이 될 수도 있겠지요. 매일 겸손히, 흔들리되 무너지지 않고, 시선을 하나님께 고정할 수 있기를, 하나님께 붙들리어 살아갈 수 있기를 기도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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